전국 농지의 절반 가까이를 비농민이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2025년 기준으로 전체 농가의 약 44%가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임차농입니다. 저는 이 수치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좀 당혹스러웠습니다.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 그러니까 농사짓는 사람이 농지를 소유해야 한다는 헌법적 대원칙이 이미 현실에서 완전히 무너져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경자유전 원칙이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 이유
일반적으로 경자유전 원칙이 있으니 농지는 농민만 소유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농촌 현장은 전혀 다른 그림입니다. 고령 농민이 은퇴하거나 사망하면 도시에 사는 자녀가 농지를 상속받고, 그 땅을 이웃 농민에게 구두로 빌려주는 관행이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농촌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이런 구조는 앞으로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서 비자경농지(非自耕農地)란 소유자가 직접 경작하지 않는 농지를 의미합니다. 현행 농지법은 원칙적으로 개인 간 임대차를 금지하지만, 실제로는 비자경농지가 전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계속돼 왔습니다.
정부는 올해 사상 처음으로 전국 단위 농지 전수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최근 10년 이내 취득한 농지 전체가 대상이며, 울주군 한 곳만 해도 조사 필지가 예년의 1만 6,000필지에서 올해 8만여 필지로 5배 이상 늘었습니다. 1차 위성영상 조사 이후 8월부터는 현장 심층조사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조사의 취지 자체는 이해합니다. 수도권 투기 세력이 농지를 매입해 땅값 상승을 기다리는 문제는 분명 존재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칼날이 투기꾼보다 고령 농민과 선의의 상속인에게 먼저 닿는다는 점입니다.
이행강제금과 현장 부작용, 규제가 낳은 기형적 풍경
이행강제금(履行强制金)이란 법적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 의무 이행을 강제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부과하는 금전 제재입니다. 현행 농지법 체계에서는 정당한 사유 없이 농지를 휴경하거나 비농업적으로 이용하면 매년 토지 가액의 25%에 해당하는 이행강제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공시지가 1억 원짜리 땅이라면 매년 2,500만 원씩 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압박이 현장에서 어떤 현상을 만들어내는지, 저는 자료를 보면서 예상 밖이었습니다. 단속을 피하려고 논에 감나무 몇 그루를 성기게 심어두거나,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사람을 불러다 사료작물을 재배시키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농지를 이용한 셈이지만, 농업 생산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풍경입니다.
현재 농지법 전수조사가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부작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휴경 적발을 피하기 위해 관리 없이 유실수만 심어두는 형식적 영농
- 임차농이 쫓겨나고 지주가 직접 명목상 농사를 짓는 구조로 전환
- 농지를 이용할 실경작자가 없는데 임대차 계약서만 형식적으로 작성
- 원거리 거주자가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해 사료작물만 재배하는 비효율 영농
더 심각한 것은 농지 거래 자체가 실종됐다는 점입니다. 지방 농촌에서는 처분하고 싶어도 살 사람이 없는데, 이행강제금 폭탄 가능성까지 겹치면서 팔지도 못하고 묵혀두는 땅이 늘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는 결국 고령 소유자가 사망한 뒤 자녀에게 이행강제금 채무까지 함께 상속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농지법 개정 방향, 왜 정부 입장이 없으면 안 되는가
[사진출처 : 농민신문]
현재 국회에는 농지법 개정안이 약 30건 제출되어 있습니다. 방향이 제각각인 것이 문제입니다. 임대차를 양성화하자는 법안이 있는가 하면, 농지전용(農地轉用) 절차를 완화해 비농업적 이용을 쉽게 하자는 법안도 있습니다. 여기서 농지전용이란 농지를 다른 목적, 예를 들어 건축물 부지나 주차장 등으로 바꿔 쓰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이 상황이 가장 우려스럽습니다. 방향 없이 조사만 먼저 완료되면, 결과를 두고 각 이해집단이 유리한 법안을 밀어붙이는 혼란이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농정당국이 법적 절차인 농지관리 기본방침을 먼저 수립했어야 했는데, 이것이 기약 없이 지연되는 실정입니다.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일반적으로 경자유전을 강화하면 농지 투기가 해소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현실은 반대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큽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농지 소유를 규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농지 이용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대원칙을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농사짓는 사람이 안정적으로 땅을 빌려 쓸 수 있고, 농지 규모화와 집적화(集積化, 분산된 농지를 한 경영체가 효율적으로 통합 운영하는 것)가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실제 농업 경쟁력을 키우는 길이라는 주장입니다.
2025년 기준 임차농 비율이 약 44%라는 수치는 이미 현행 농지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방증입니다. [출처: 통계청] 조사가 끝나도 제도적 정비 없이 이행강제금 처분만 쏟아진다면, 그 피해는 투기꾼이 아닌 오래 농사를 지어온 고령 농민과 그 가족에게 집중될 것입니다.
농지 전수조사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조사의 목적이 실경작자를 보호하고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라면, 조사와 동시에 제도 개선 방향을 공론화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투기 억제와 고령 농민 보호, 임차농 권리 안정화라는 세 가지 목표가 충돌 없이 설계되어야 합니다. 그 방향타를 정부가 먼저 잡지 않으면, 이번 조사는 농촌을 살리는 계기가 아니라 새로운 혼란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방향을 정해야 할 시점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법률·농업 정책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
https://v.daum.net/v/20260710001524054
http://www.gn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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