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이 발표를 처음 접했을 때 단순한 산업 정책 뉴스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경북 구미가 땅을 3.3㎡당 단돈 천 원에 내주겠다고까지 했는데도 탈락했다는 대목에서 멈췄습니다. 수백조 원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 후보지가 호남으로 결정된 이 사건, 산업 논리만으로 설명이 안 되는 지점들이 꽤 있습니다.
정치 논리인가, 균형발전인가
일반적으로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 선정은 용수 확보, 전력 인프라, 부지 가격, 기존 산업 생태계와의 연계성 등을 종합 평가해 결정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용인·평택이 세계적인 반도체 허브로 자리잡은 것도 이런 요소들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번 발표 내용을 들여다보니 결이 조금 달랐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기존 용인, 평택을 중심으로 한 사이트는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서남권 신규 투자의 명분을 제시했는데, 그 핵심 논거 중 하나가 "호남 지역이 장기간 개발에서 소외되면서 오히려 기회의 요인이 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표현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낙후가 기회라는 논리는 국가균형발전(National Balanced Development) 관점에서 일정 부분 타당한 측면이 있습니다. 여기서 국가균형발전이란 특정 지역에 인구와 산업이 집중되는 것을 막고 전국 어디서나 삶의 질이 고르게 유지되도록 자원을 배분하는 국가 전략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그 '기회'를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이 지역에 집중시키느냐는 것입니다. 대구·경북은 단체장이 야당 소속이라는 이유로 노골적인 배제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하고, 충청권은 "전남은 반도체 산업의 최적지가 아니다"라고 날을 세웠습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여당 핵심 지지기반인 호남에 산업이 집중된 것은 분명 논란의 소지를 남깁니다. 제 경험상 정책의 방향이 옳더라도 절차와 타이밍이 의심스러우면 신뢰를 잃는다는 걸, 이번 사태가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각 지역이 제기하는 반발의 핵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경북 구미: 3.3㎡당 1,000원이라는 파격 조건에도 탈락, 허탈감과 형평성 문제 제기
- 대구·경북: 야당 단체장 지역의 노골적 배제라는 정치적 해석
- 충청권: 반도체 인프라 측면에서 전남은 최적지가 아니라는 산업 논리 반박
- 경기 용인: 기존 프로젝트가 흔들리지 않은 것에 안도하면서도, 정부의 기업 압박 여부에 의구심
[사진출처 : mbc]
이재용·최태원에게 90도 인사, 어떻게 볼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하고 "국가 영웅"이라고 부른 장면은 꽤 강렬했습니다. 저는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솔직히 좀 과하다 싶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업과 정부의 관계에서 대통령이 기업 총수에게 이 정도로 공개적인 예우를 표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런데 맥락을 뜯어보면 이 퍼포먼스는 FDI(Foreign Direct Investment), 즉 해외직접투자 유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국내 투자를 이끌어낸 것에 대한 정치적 보상의 성격이 강해 보였습니다. FDI란 기업이 다른 나라에 공장이나 시설을 짓거나 지분을 취득해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 형태의 투자를 의미하는데, 미국이나 일본 등이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앞세워 한국 대기업들을 적극 유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에 남겠다는 선택 자체가 실질적인 가치를 갖는다는 논리입니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게 순수한 자발적 결단이었느냐 하면, 저는 여기서도 좀 의문이 생겼습니다. 경기 용인시장이 "사회대개혁위원회가 용인 국가산단을 흔들려고 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정부가 기업의 투자 방향에 상당한 압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기업이 순전히 사업성만 보고 판단했다면, 기존 생태계와 인프라가 갖춰진 수도권을 두고 굳이 서남해안으로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을까요. 그 점에서 '어려운 결단'이라는 대통령의 표현이 마냥 수사(修辭)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반도체 산업에서 클러스터(Cluster) 효과는 매우 중요합니다. 클러스터란 특정 지역에 관련 기업, 연구소, 공급망이 집적되어 시너지를 내는 산업 생태계를 뜻합니다. 용인·평택·이천으로 이어지는 기존 반도체 벨트가 강력한 이유가 바로 이 클러스터 효과 덕분인데, 신규 사이트가 이를 어떻게 대체하거나 보완할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출처: 산업통상자원부]
서남해안, 정말 반도체 신규 거점이 될 수 있나
정부가 제시한 서남해안의 입지 논거는 나름 구체적입니다. 신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자원이 풍부하다는 점, 용수 확보가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점, 그리고 광주·전남 통합에 따른 지방정부 매칭 재원이 최대 20조 원에 달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여기서 신재생에너지란 태양광, 풍력 등 자연에서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는 에너지원을 의미하는데, 반도체 공장은 전력 소비가 극단적으로 많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값싼 전력 확보가 입지 선정의 결정적 변수로 작용합니다.
제가 이 논거를 보면서 "나쁘지 않은 카드"라고 생각한 건 사실입니다. 반도체 팹(Fab), 즉 반도체를 실제로 생산하는 제조 공장은 24시간 365일 중단 없이 전력과 초순수(超純水)를 공급받아야 하는 시설입니다. 수도권 집중이 가져오는 전력망 포화와 용수 부족 문제는 실제로 업계에서 자주 거론되는 사안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서남해안의 잠재력은 일정 부분 타당성을 갖습니다.
다만 인프라가 아직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기존 반도체 벨트는 수십 년에 걸쳐 협력사,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 연구개발 인력이 함께 쌓인 결과물입니다. 소부장이란 소재·부품·장비의 줄임말로,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화학 물질, 정밀 부품, 생산 설비를 공급하는 산업을 가리킵니다. 이 생태계를 서남해안에 새로 조성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 그 사이 기업들이 어떤 비효율을 감수해야 할지는 정부 발표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반도체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신규 거점 조성에 최소 10년 이상이 필요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출처: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결국 이번 발표의 성패는 정부가 약속한 인프라 투자와 세제 지원이 얼마나 신속하고 일관되게 이행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대통령이 "청와대 안에 직할 담당관을 두고 직접 챙기겠다"고 한 것은 의지 표명으로는 강했지만,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염불이 될 수 있습니다.
정치적 의도가 있든 없든, 수백조 원의 투자와 수만 개의 일자리가 걸린 문제입니다. 저는 이번 결정이 반드시 틀렸다고 단정하기보다, 검증이 필요한 결정이라고 봅니다. 지역 갈등을 부추기는 방식이 아니라, 선정 기준과 평가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지금 정부가 해야 할 다음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과정이 불투명하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는 건, 어느 정권이나 반복해서 겪어온 교훈입니다.
참고 :
https://m.ytn.co.kr/news_view.php?key=202606292238315638&s_mcd=0115#ret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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