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국민연금이 이 정도로 '전략적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걸 최근에야 제대로 알았습니다. 코스피가 8,000선을 돌파하고, 국민연금 적립금이 1,800조에 육박한다는 뉴스를 보면서 막연히 좋은 일이라고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들여다보니 오히려 지금이 더 어려운 국면이더라고요. 국민연금이 국내주식 비중을 늘려야 하는지, 아니면 지금까지의 방향을 유지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할 '기로'에 서 있습니다.
국내주식 비중이 왜 갑자기 문제가 됐을까
올해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수익률은 2월 말 기준 49.8%였습니다. 해외주식 수익률 3.2%와 비교하면 거의 15배 차이입니다. 이 수치를 처음 봤을 때 저도 눈을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수익률이 오히려 골치 아픈 문제를 만들어냈습니다.
국민연금의 올해 국내주식 목표 비중은 14.9%입니다. 그런데 2월 말 기준 실제 비중은 24.5%, 금액으로는 395조 원에 달했습니다. 주가가 오르면서 보유 자산의 평가액이 커지고, 자연스럽게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국내주식이 차지하는 비중도 함께 부풀어 오른 것입니다.
여기서 전략적 자산 배분(SAA, Strategic Asset Allocation)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SAA란 장기 수익 목표와 허용 가능한 위험 수준을 설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각 자산군의 목표 비중을 정해두는 운용 전략입니다. 국민연금은 이 허용 범위를 목표 비중에서 ±3.0%p로 설정해두고 있는데, 현재 국내주식 비중이 이 범위를 한참 벗어난 상태입니다. 규정대로라면 초과분을 팔아 비중을 낮춰야 하는데, 그 규모가 150조 원 안팎에 달합니다.
리밸런싱 딜레마, 팔자니 시장이 무너지고
제가 이 문제에서 가장 답답하게 느낀 부분이 바로 리밸런싱 딜레마였습니다. 리밸런싱(Rebalancing)이란 포트폴리오 내 각 자산의 비중이 목표치에서 벗어났을 때, 초과 자산을 팔고 부족한 자산을 사서 원래 비중으로 되돌리는 작업입니다. 개인 투자자라면 "많이 오른 거 팔고, 덜 오른 거 사면 되지" 정도로 간단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규모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코스피 전체의 상당 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이 150조 원어치의 국내주식을 한꺼번에 내다 팔면 어떻게 될까요. 시장에 충격파가 퍼지는 건 피할 수 없습니다. 이를 시장 충격(Market Impact)이라고 하는데, 대규모 매도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질 때 가격이 급락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국민연금이 팔기 시작했다는 신호 자체가 개인 투자자들의 공포심을 자극해 추가 하락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코스피가 8,000선을 처음 돌파한 당일,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지며 7,493으로 -6.12% 급락 마감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대규모 매도까지 겹쳤다면 낙폭은 훨씬 컸을 것입니다. 국민연금으로서는 "팔자니 시장이 무너지고, 안 팔자니 규정을 어기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인 겁니다.
중기배분안의 핵심 쟁점, 국내주식 비중을 올릴 것인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5월 중 2027~2031년을 대상으로 하는 중기자산배분안을 최종 심의·의결할 예정입니다. 중기자산배분안이란 향후 5년간 국내외 주식, 채권, 대체투자 등 자산군별 목표 비중과 운용 방향을 결정하는 전략적 계획입니다. 쉽게 말해 국민 노후 자금을 어디에 얼마나 넣을지 5년짜리 큰 그림을 그리는 작업입니다.
이번 논의의 초점은 분명합니다. 국내주식 목표 비중을 올릴 것이냐, 올린다면 얼마나 올릴 것이냐입니다.
국내주식 비중 확대를 지지하는 측의 논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 상법 개정 등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상당 부분 해소됐다는 점. 코스피 PBR(주가순자산비율, Price Book-value Ratio)이 2.38까지 올라 독일·일본보다 높아졌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PBR이란 주가를 주당 순자산으로 나눈 값으로, 낮을수록 주식이 자산 대비 저평가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 반도체 기업 중심의 영업이익이 대폭 증가하며 기업 펀더멘털 자체가 개선됐다는 점([출처: 자본시장연구원](https://www.kcmi.re.kr)).
반면 신중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한국 경제가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2% 수준에 불과합니다. 국민 노후를 책임지는 연기금이 변동성이 큰 단일 시장에 과도하게 노출되는 것은 분산투자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입니다. 저 역시 이 부분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싶습니다. 수익률이 좋을 때 비중을 늘리는 건 자칫 '고점 추격'이 될 수 있거든요.
국민연금이 가져야 할 진짜 기준은 무엇인가
이번 논의를 지켜보면서 제 경험상 이건 수익률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민연금의 본질적 목표는 수익 극대화가 아니라, 안정적인 노후 소득 보장입니다.
연금 고갈 예상 시점이 기존보다 늦춰져 2064년으로 조정됐다고는 하지만, 수급자에게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자산을 현금화해야 할 시점은 반드시 옵니다([출처: 국민연금공단](https://www.nps.or.kr)). 그 시점에 국내주식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면, 대규모 매도로 인한 시장 충격이 국내 증시를 흔들고, 결과적으로 연금 수급자들의 노후 자산 가치까지 훼손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사진출처 : 연합인포맥스]
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라고 토로한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저도 이 말이 이 상황을 가장 정직하게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례가 없으면 원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단기 수익률에 흔들리지 않고, 장기 분산투자라는 기본 원칙을 얼마나 지켜낼 수 있느냐가 이번 중기배분안의 진짜 시험대가 될 것 같습니다.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이 개인 투자자들에게 주는 힌트도 있습니다. 수익률이 폭발적으로 오를 때 비중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때가 리스크 관리를 점검해야 할 타이밍이라는 것입니다. 5월 말 기금운용위의 최종 결정을 주의 깊게 지켜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실제 투자 결정은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562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