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반도체 주식을 들고 있다면 한 번쯤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없으신가요. "이게 진짜 성장인가, 아니면 나만 모르는 거품인가." 저도 요즘 포트폴리오를 볼 때마다 그 질문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지난 한 달 새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가 약 40% 급등했고, 알파벳은 단 하루 만에 시가총액이 4,200억 달러 넘게 불어났습니다. 숫자만 보면 흥분되지만, 그 숫자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따져봐야 할 시점입니다.
거품 신호,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주변에서 주식 얘기가 끊이지 않을 때, 저는 오히려 긴장합니다. 헬스장 러닝머신 위에서, 미용실 의자에 앉아서, 심지어 편의점 계산대 앞에서도 AI 반도체 종목 이야기가 나오는 요즘 분위기가 딱 그렇습니다. 보스턴 아카디안 자산운용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오언 라몬트는 거품을 판별하는 기준으로 단순히 높은 주가가 아니라 높은 변동성, 폭발적인 거래량, 그리고 거품이라는 믿음 자체가 대중 사이에 퍼지는 현상을 꼽습니다([출처: WSJ](https://www.wsj.com)).
여기서 변동성이란 자산 가격이 단기간에 얼마나 크게 오르내리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보통 시장이 불안정할수록 높게 나타납니다. 지금 반도체 시장의 변동성 수치를 들여다보면, 단기 급등이 반복되는 패턴이 눈에 띕니다. 제가 직접 차트를 살펴봤는데, 이 정도 단기 등락 폭은 2020~2021년 SPAC 열풍 때와 묘하게 닮아 있었습니다.
라몬트가 덧붙이는 네 번째 신호가 저는 특히 신경 쓰입니다. 바로 주식 공모(IPO) 물량의 폭발적 증가입니다. IPO란 기업이 처음으로 주식을 시장에 내놓는 것으로, 특정 산업에 IPO가 쏟아지면 그 산업에 과도한 자금이 몰리고 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스페이스X, 오픈AI, 앤트로픽 등 거대 AI 기업들이 올해 안에 상장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들이 실제로 시장에 나오는 시점이 분수령이 될 수 있습니다.
거품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신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높은 변동성과 폭발적 거래량이 동시에 나타나는가
- 거품이라는 믿음이 일반 대중 사이에 빠르게 퍼지고 있는가
- 고평가 자산의 지지자들이 비판자를 공격하기 시작하는가
- 신규 주식 공모(IPO) 물량이 급격히 늘어나는가
- 가격이 올라서 사고, 사기 때문에 또 오르는 순환이 반복되는가
닷컴버블과 지금, 뭐가 같고 뭐가 다른가
영화 '빅쇼트'의 실제 주인공 마이클 버리가 최근 "1999~2000년 거품의 마지막 달에 와 있는 느낌"이라고 했을 때, 솔직히 저는 처음엔 또 저 양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버리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정확히 예측하고 공매도로 큰 수익을 냈지만, 그 이후에도 비관론을 자주 내놓으면서 여러 차례 틀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가 지적한 한 가지는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주가가 그동안 올랐으니까 그냥 오르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이것이 바로 수익 추구 행동(momentum-driven buying)의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수익 추구 행동이란 자산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사고, 더 많이 사기 때문에 가격이 더 오르는 자기강화 순환을 말합니다. 닷컴버블 당시 수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별다른 수익 모델도 없이 상장해 주가가 치솟았던 것도 이 구조였습니다.
다만 지금은 그 시절과 다른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SK하이닉스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은 현재 5.2배, 삼성전자는 6.0배 수준으로 보고됩니다. P/E란 현재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숫자가 낮을수록 이익 대비 주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의미입니다. 닷컴버블 당시 기술주들의 P/E가 수백 배를 호가했던 것과 비교하면, 지금 메모리 반도체 종목들의 밸류에이션이 터무니없이 부풀어 있다고만 보기는 어렵습니다([출처: SK증권](https://www.sks.co.kr)).
제 경험상 이런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태도는 "지금은 달라"라고 확신하는 것과 "무조건 거품이야"라고 단정하는 것, 이 두 극단입니다.
AI 수요와 HBM, 밸류에이션의 근거는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의 반도체 주가 상승에는 실제 수요라는 받침대가 있는 걸까요. 저도 이 부분이 가장 궁금했습니다.
핵심은 HBM(High Bandwidth Memory)입니다. HBM이란 여러 개의 D램 칩을 수직으로 쌓아 연결한 고대역폭 메모리로, AI 연산에 필요한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데 특화되어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GPU에 탑재되는 이 메모리를 현재 SK하이닉스가 독점에 가까운 비율로 공급하고 있고,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수요가 계속 늘어나면서 공급자 우위 환경이 강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6세대 HBM인 HBM4의 출하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의 2026년 HBM 매출은 전년 대비 72% 증가한 54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이런 수치들을 보면 지금의 주가 상승이 순전히 기대감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제가 직접 관련 리포트들을 읽어보면서 느낀 점은, 낙관적인 전망들이 모두 AI 투자가 계획대로 지속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것입니다. 빅테크 기업들이 AI 인프라 투자를 줄이거나, 예상보다 AI 상용화가 늦어진다면 이 전망들은 한꺼번에 흔들릴 수 있습니다.
올인도 전량 매도도 아닌, 지금 해야 할 것
그렇다면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버블인지 아닌지를 정확히 맞힐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사실 가장 위험한 착각입니다. 저도 한때 "이번엔 확실해"라고 생각하며 집중 베팅을 했다가 생각보다 훨씬 오래 버티는 장세에 당황한 경험이 있습니다. 반대로 "이건 거품이야"라며 너무 일찍 빠져나왔다가 이후 상승분을 통째로 놓친 적도 있습니다.
주식은 켜고 끄는 스위치가 아닙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응은 포트폴리오의 분산 구조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S&P 500 대형주 중심으로만 들고 있다면 소형주나 해외 주식 비중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최근 크게 오른 AI·반도체 관련 자산 일부를 줄이고,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채권이나 가치주를 늘리는 리밸런싱도 고려할 만합니다. 리밸런싱이란 목표 비중에서 벗어난 자산들을 원래 비율로 되돌리는 작업으로, 자동으로 고점에서 팔고 저점에서 사는 효과를 줍니다.
지금 시장이 거품인지 아닌지는 솔직히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어느 쪽이든 대비가 되어 있는 포트폴리오라면, 어떤 결과가 나와도 치명상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중요한 투자 결정은 반드시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