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굴릴 곳을 찾다가 국민연금 운용 방식을 들여다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가 매달 꼬박꼬박 내는 그 돈이 이렇게 복잡한 논리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걸요. 지금 국민연금은 1,700조 원을 넘어섰고, 올해만 300조 원 넘게 불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눈부신 성과가 오히려 골치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1,700조 기금의 딜레마, 지금 숫자가 말하는 것
저는 개인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면서 리밸런싱의 고통을 직접 겪어봤습니다. 리밸런싱이란 목표로 정해둔 자산 비중이 시장 변동으로 틀어졌을 때, 매도와 매수를 통해 원래 비율로 되돌리는 작업입니다. 주식이 올랐을 때 팔아야 하는 그 느낌, 수익을 확정하는 건데도 손이 떨리더군요. 국민연금이 지금 딱 그 상황입니다. 규모만 수백조일 뿐.
2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은 전체 자산의 24.5%, 금액으로는 395조 원에 달했습니다([출처: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https://fund.nps.or.kr)). 이후 코스피가 추가로 약 18~26% 더 오르면서, 현재 국내주식 비중은 25%를 훌쩍 넘고 투자 규모는 약 470조 원으로 추산됩니다. 올해 목표로 잡은 비중이 14.9%였는데, 이미 10%포인트 넘게 초과한 겁니다.
문제는 여기서 나옵니다. 국민연금은 전략적자산배분(SAA)이라는 틀 안에서 운용됩니다. SAA란 장기 수익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주식, 채권, 대체투자 등 자산군별로 목표 비중을 미리 정해두는 중장기 투자 전략입니다. 이 틀에 따르면 허용 범위인 ±3%포인트를 적용해도 국내주식 상한선은 17.9%, 전술적자산배분(TAA) 허용 범위까지 더해도 19.9%에 그칩니다. TAA란 단기 시장 상황에 따라 SAA 목표치에서 추가로 비중을 조절할 수 있는 재량 범위를 말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계산해도 현재 비중은 상한선을 크게 벗어난 상태입니다.
원칙대로 비중을 되돌리려면 팔아야 할 국내주식 규모가 최대 130조~165조 원에 달합니다. 이 물량이 시장에 쏟아지면 코스피가 어떻게 될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국민연금은 올해 1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목표 비중을 0.5%포인트 올리고 리밸런싱을 한시적으로 유예했습니다. 그 유예 기간이 다음 달 끝납니다.
핵심 쟁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현재 국내주식 비중: 약 25% 이상 (목표치 14.9% 대비 10%포인트 초과)
- 원칙대로 매도 시 시장 투입 물량: 최대 130조~165조 원
- 5차 기금운용위원회 최종 결정 시한: 2026년 5월 28일
- 검토 방향: 채권·대체투자 비중 조정으로 국내주식 목표 비중 상향
목표 비중을 높이면 해결될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주변에서 "코스피가 이렇게 오르는데 국민연금이 국내주식 비중 높이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는 말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맞는 말 같습니다. 올해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수익률은 2월 말 기준으로 49.8%에 달했으니까요. 해외주식 수익률 3.2%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수치입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한 해 수익률이 좋다고 해서 그 자산의 목표 비중을 올리는 건 사실 '결과를 보고 전략을 짜는' 꼴입니다. 자산 배분의 원칙은 미래 기대수익률과 위험 수준을 보고 결정하는 거지, 이미 오른 가격을 보고 뒤늦게 비중을 올리는 게 아닙니다. 개인 투자자도 이 함정에 자주 빠지는데, 1,700조 규모의 공적 연기금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 건 저만이 아닐 겁니다.
물론 구조적인 변화를 근거로 드는 시각도 있습니다. 상법 개정을 통한 주주 보호 강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반도체 기업 중심의 영업이익 증가 등이 국내 증시의 체질을 바꿨다는 논리입니다. 실제로 코스피 PBR(주가순자산비율)이 2.38까지 올라 독일이나 일본보다 높아졌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여기서 PBR이란 주가가 기업의 순자산에 비해 얼마나 비싸게 거래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높을수록 시장이 해당 기업의 미래 가치를 긍정적으로 본다는 뜻입니다([출처: 자본시장연구원](https://www.kcmi.re.kr)).
다만 제가 직접 공부해보니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이 있습니다. 한국 경제가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2% 수준입니다. 그런데 국내주식 목표 비중을 계속 높이다 보면, 글로벌 분산투자라는 연기금의 본래 원칙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나중에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자산을 매도해야 할 시점입니다. 그때 국내주식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면, 대규모 매도 자체가 국내 증시를 직격할 수 있습니다. 기금 수익률이 떨어지고, 동시에 시장도 흔들리는 이중 타격이 생길 수 있는 겁니다.
5월 28일 열리는 제5차 기금운용위원회에서는 2027~2031년 중기자산배분안이 최종 확정됩니다. 현재로서는 국내주식 목표 비중을 높이되, 허용 범위를 좁혀 속도를 조절하는 방향이 유력한 것으로 보입니다. 비중은 올리지만 자동으로 매도 압력이 발생하는 구간을 좁게 가져간다는 구상입니다.
[사진출처 :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결국 이번 결정은 단순한 숫자 조정이 아닙니다. 제가 이 문제를 공부하면서 느낀 건, 국민연금의 자산 배분 방향은 우리 모두의 노후와 직결된다는 겁니다. 주가가 오를 때 환호하고 끝낼 일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팔 것인가까지 함께 생각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5월 28일 이후 확정되는 중기자산배분안, 발표되면 꼭 한 번 직접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우리 노후 자금이 어디에 얼마나 실리게 되는지, 이제는 관심을 가질 때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은 반드시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https://v.daum.net/v/20260517144754051